네가 어디 있느냐 ?
“하느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이르시되 네가 아디 있느냐”
(창세기 3; 9 )
성경에 최초로 등장 되는 인물이 아담과 이브이다.
하느님께서 이들 부부를 부르시는 대목이 위에 언급한 창세기 3장 9절에 나온다.
"네가 어디 있는냐?" 는 질문은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면서도 넌지시 불러 보는 대목인데 죄를 지은 이들의 면목이 없었던지 에덴 동산 한 귀퉁이에 숨어 버리는 부끄러움을 보여 주고 있는 성경 구절이다.
잘못을 저질렀거나 죄를 범한 사람의 특징은 숨음 이다.
숨어서 들키지 않을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담을 빗대 놓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질문은 오늘 내게도 여전히 들려 온다.
“하느님 제가 오늘도 죄를 범하고 말았군요.. 처분 만 기다리겠습니다.”
하루를 살다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뉘우치는 일과 생각이 번갈아 뇌리를 스친다.
주일을 지키는 범부나 다름 없는 우리가 성당에서 일요일 미사할 때 신부님의 1시간 미사 전례 때 “죄”를 지었사오니 용서를 구하는 신부님의 구원 요청이 세어 보니 30번 이상이나 된다.
죄의 덤태기에서 하루 아니 일생의 삶이 연속 되는 우리이다.
하느님께서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물으실 때 옳게 대답 할 수 있는 사람은 성직자 말고 누가 있으랴.
“네가 어디 있느냐 ?” - 이 하느님의 말씀을 어디서나 들으며 깨어 산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생활을 할 것이다.
아니다. “네가 어디 있는냐?” 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지 않도록 살야야 한다.
내가 있지 못할 곳에 있을 때 “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하시는 하느님의 꾸지람을 듣고 반성하는 회개의 때가 있다면 나는 살아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잘 해야지 하면서 죽어서나 없어질 인간이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를 드린다.
봄 철을 알리는 입춘이 지나고 대동강 물이 녹는다는 우수도 지났고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3월 6일 내일로 닥아 왔는데 오늘 내리는 봄 비에서 주님의 음성이 내게 또 들린다.
“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