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세기 1“:4,11,12, 18,21.25,31 )
하느님께서 손수 지으신 세상 모든 것을 빈틈 없이 설계 하시고 흡족해 하셨다.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하늘과 땅과 양육 강생의 조화를 살피시어 만물을 조성하시고 이 세상을 내려다 보시며 좋아 하셨다.
창조물을 마련 하시고 6일 되는 아침에 밝고 맑은 햇살을 품에 안으시고 손 수 지으신 생명의 만물을 보시면서 홀로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셨으리라.
초자연의 흠 없는 세상의 설계는 뜻하신 바대로 빈틈 없이 운영 되게 하셨고 놀랍도록 내재된 질서는 인과응보의 테두리를 벗어 나지 않게 마련 하셨다.
두고 두고 살펴봐도 그 능력은 초 자연 그대로가 수억만년을 지속하고 질서 정연하게 귀추되게 하셨다.
태초로부터 이어오는 창조를 이루시며 못내 좋아 하셨다고 성경에 일곱 번이나 누누이 지적 하셨다.
좋은 것을 좋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 하겠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좋아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
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달이 뜨는데 빛을 창조 하시면서 아침은 훤하게 밝혀 주시고 저녁이면 어둔 빛으로 하루를 명확히 구분하여 주셨다.
그래서 인간은 아침이면 밝는 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땀 흘려 일하고 저녁이면 어두워져 한 밤 중에는 우리를 잠자리에 들게 하셨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여 동 식물에게 없는 삶의 지혜를 주셔서 창조물 중 으뜸가게 하셨으니 놀랍기만 하다.
게다가 생리학적 표현을 굳이 빌린다면 낮에는 교감 신경 활동을 빛나도록 하시어 능력 껏 일하는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분명히 일의 결과물을 풍족하게 하여 주셨으며 밤에는 부교감 신경이 대칭적으로 솟게 하시어 수면을 주셔서 단잠을 자도록 일러 주셨다.
그래서 남성에게는 땀 흘려 일하게 하시고 여자에게는 분만과 잉태를 허락 하시어 일부 일처의 부부 생활을 일평생 하며 살아 가도록 생활의 법 질서를 인간이 이루게 하여 주셨다.
인류가 평화를 지극히 누리는 마음으로 일평생 아름다운 생활을 다음과 같이 한다면 투쟁과 질투와 전쟁은 사라 질 겄이다.
1) 하루를 일목요연하게 일과를 정리하면서 산다.
2) 평생을 일사 분란하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여 진실하게 산다.
3) 서로 서로 참 다운 이웃으로 도우며 산다.
4) 사랑의 불씨를 잘 키워서 인류를 풍요롭게하며 산다.
5) 자신을 한 없이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산다.
. 다시 말해 사람으로 태어나면 선과 진실과 아름다움과 밝음과 맑은과 깨끗함과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겠고 결국 그래서 용서와 관용과 베품의 삶을 살아야 겠다.
그런데 그게 말 대로 쉽지 않음을 안다.
반대로. 악과 거짓과 추함과 어두움과 흐림과 더러움으로 삶이 치우쳤다면 이율 배반적인 양심의 가책으로 인하여 질투와 투쟁과 반목하게 하는 반복된 허상에 맺게 된디.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신앙은 결국 하느님과 함께 사는 매일 매일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인간을 좋은 것을 좋아하게 매사에 힘쓰면 즉 신앙을 북 돋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나쁜 것을 따르게 되면 사탄의 자녀가 된다.
인간의 탈을 쓴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평화와 공평의 삶을 이루고 죄 없이 살아야 마음이 풍요로워 진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께닫게 된다.
좋은 것을 좋아 하도록 만드는 것이 하느님의 자녀들의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