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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악 관련 번역 시리즈 17

baeksong 2012. 7. 10. 15:47

제 16 부

러네이 케이시의 이야기

(편집자 주: 지난주의 글에서, 러네이가 토론토의 에니 본너부인을 에시악으로 치료한 얘기를 했다. 이번주에도 에시악 요법을 받은 딴 환자들 얘기를 계속한다.)

본너부인의 경우, 방사선과 엑스레이가 실패해서, 절단수술을 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위원회가 방사선때문에 완치가 됐다고 인정한 이유를 이해할수가 없다.

내가 완치할수있던 환자를 코넬박사가 거절했을 때, 그들은 나를 무시하고, 25,000불의 정부 연구비를 받게 코넬박사를 추천했다.

지.에이치.오. 토마스는 전시장이고 브레이스브리지 가제트의 발행인인데 그의 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을 했다:

토니 바줔은 약간 이국적으로 보이고, 엉터리 영어를하는 미남형의 청년이다.

토니는 토론토에서 카프리올까지 달리는 카나다 국립 철도회사의 차장인, 프랭크 모리스씨가 화요일 오후에 나한테 데리고 왔다.

"이사람은 카프리올에서 온 토니 바줔이다." 모리스씨가 말했다.

토니의 인사말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 나는 케이시양을 보러 왔는데 출타중이다,"

그는 말했다. " 내입술이 매우 크다," 그의 큰 노동자의 주먹을 갖다 데면서 가르켰다. " 맞아," 모리스씨가 말했다.

" 나는 토니를 안지가 10- 12년되는데, 카프리올에서 철도국일을 한다."

"그들이 나를 런던에보냈다, " 토니가 말을 한다, " 그리고 라듐을 받게했다. 내입은 몹시 아팟고, 악화됐고, 입술은 어느 때 보다 더 커졌다. 빨대를 통해야만 음식을 취할수 있었다.뜨거운것, 찬것은 무엇이든 견딜수없었다. 입으로 숨 쉴수가 없었다." 그가계속해서 말했다.

"모두 맞는 말이야," 차장이 말했다. "기관사인 쟈니 브라이언트는 내가 암이있다는걸 알았다. 나를 보자, 나에 게 브레이스브리지에 꼭가서 케이시양을 만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토니가 말했다. " 그런데 나한테 돈이없다," 토니가 말했다 . "쟈니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5불을 꺼내 주면서 나 한테 갚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 11월 8일에 브레이스브리지에 와서 케이시양이 입술에 발를 연고를 주고 내 팔에 뭘 발라주고 두 주 후에 돌아 오라고 했다. 그때는 올수가 없어 오늘오니 그녀가 출타중이다.

내 입술을 지금보라," 그는 말했다. 내가 보니 단지 조그만 상처들만 보였는데, 라듐때문이라고 한다, 입술에 어떤 나쁜일이 있었다는 증거로 남아있었다.

지.에이치.오. 토마스씨가 기술했다. "케이시양의 오직 한번의 치료를 받고, 입술과 입이 부어서 성인의 주먹만큼 커졌었고 통증으로 고문을 당하다가, 정상적인 건강한 입술이됐다.

바줔씨는 우그라이나 부모 로 부터 카나다 에서 태어낳다. 그는 마니토바의 우크라니안 정착지에서 영어가 거의 사용 되지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토니 바줔은 케이시 양이 치료한 수많은 각층의 환자중 하나에 불과하다. 치료전의 그의 상테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잘 아는, 차장 프랭크 모리스가 보증한다."

이것은 몇않되는, 암 위원회가 완치로 인정한 경우중에 하나이다. 토니 바줔은 현재 건강히 살아있다(1977). 나는 그가 보낸 편지를 갖고있는데, 그는 재발하지않았고, 일하고 있고, 가족이 있다.

온타리오의 수상인 미첼 헾번 각하의 말을 인용한다:

"무거운짐은 지금 의료계 쪽에 있다.

그들은 케이시 양의 주장들을 입증을 하거나 반증을 해야 만 한다. 나는 그들이 반증할수있다고 생각하지않는다. 나는 케이시양의 일에 동정을 하고 힘을 다해 그녀를 돕겠다." 그러나 의료게는 수상에게 조차 너무 강력했다.

외과전문의, 뉴욕 로체스터 검시관인 리차드 레오날도박사는 처음에는, 내 일이 상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을 비 웃었다. 나는 그에게 내 일을 입증하던 반증하던 유일한 방법은 진료실에 남아서 환자를 보고, 내가 일하는 걸 보는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러기로 결정을 했다.

첫날 그는 남아서 환자들과 얘기를 했다. 그런다음 내가 결과를 얻는 것에 만족하지만, 그것은 나때문이지, 내 치료가 아니라고 판결을 내렸다. 전부가 심리적이라고 말했다. 두째날 나는 그를 치료실에 초대해서 환자를 검진하고 내가치 료하는것을 관찰하게했다.

진료실은 크고, 심한 중중 환자들이 많아 오후 7:30 에야 마칠수있었다. 이 의사는 마지막 환자가 갈때까지 남아있다가, 나 한테 이렇게 말했다:

" 아가씨, 축하하지않으면 않되겠읍니다. 당신은 훌륭한 발견을 하셨읍니다." 카슨 박사는 아직 남아 그와 동의했다. 레오날도 박사는 4일은 머무르고 환자를 검진하고, 내 결과에 대해서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됐다.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치료 방법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암요법의 전반적인 이론을 변화시키고, 궁국적으로 수술,라듐, 엑스레이 요법이 필요없게 될걸로 생각됩니다."

그는 , 내가 그와 같이 거기에가서 같이 일을 하겠다면, 뉴욕로체스터에 병원을 세우고, 장비를 갖추겠다고 제의했다. 레오날도박사의 의견을 고맙게 생각했다, 왜냐면, 그는 독일과 비엔나그리고 런던과 스코트랜드에서 과학적인 훈련을 받았고,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내 치료법이 장점이 있다고 그를 설득 할 수 있어 대단히 만족한다.

세계는 에시악이 필요하고 그것도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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