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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시악 관련 소책자 번역 안내 시리즈 1

baeksong 2012. 6. 9. 11:38

브레이스 브리지 세미너 1979년 1월
러네이 케이시 자신의 이야기
제1부 시작을 위한 서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은 재산 보다 더 귀하다"
이번주부터 브레이스브리지의 러네이 케이시가 에시악 을 암치료제로 인정 받기 위해 고전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일련의 기사로 발표한다.
다음에 따르는 것은 에시악의 약효에관한 러네이의 견해와 그녀가 겪은 사회 각층으로부터 온 끊임없는 반대였다.
여기있는 말들은 러네이 자신의 말들이고, 대부분 그녀가 직접 쓴 글들과 1977년 가을 그녀가 나와 했던 비공개 인터뷰에서 뽑은것이다.
지방신문의 편집자인 나에게 러네이는 부탁을해서 에시악에관한 이모든 논쟁에 대해 그녀가 나름데로의 소견을 발표할수 있도록 자기가 죽은 후에 이글을 발간해 달라고했다.
다음 이야기의 대부분은 1930년대로 돌아간다. 간호사 케이시의 긴 생애중 이때가 가장중요한 시기였던게 분명하다.
어쩌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일들이 40년전과 별다름없이 반복되고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지난 18개월동안 러네이의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에시악 의 처방이 드디어 레스피린회사로 이전 됐다는것이다.
그외에는 1930년대에 생긴 일 들과 1970년대는 놀랍게도 비슷하다.
러네이는 이권을 노리는 자들이 그녀의 일에 반대하고 있다는것을 항상 감지하고. 그것은 다음 글들에서 반복해서 나타난다.
에시악과 각종 암의 치유에 반대하는 혹종의 음모가 있던 없던, 그사실은 밝혀져야 할 일이지만, 간호사 케이시는 대세는 분명코 자기와 반대편이라고 믿었다.
사실, 그녀는 만일 누가 암을 간단히, 탈없이 완치할 방법이 있다고 말하면 그 사람의 일생은 평탄치 못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만일 에시악 을 인정받기위해 러네이가 노력할때 받은 고초를 누가 알았다면, 그녀가 자기를 반대해온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자 들을 우려했다는것을 이해하고 남을것이다.
앞으로 몇주일 동안, 러네이의 이야기를 그녀자신의 말외에 아무런 교정이나 수식어를 달지않고 발표한다.
비록, 러네이가 별세했지만, 이글로써 그녀의 추억을 되살리고, 모든 에시악 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밝히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이렇게 해서 적어도 러네이 케이시의 고향 사람들이그녀가 평생을 다바쳐 전심한 한 문제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알게될테니까.
편집자: 테드 브리튼